Book Cafe/천로역정 스터디 가이드 (두란노)

5장 든든한 벗, 신실과 손잡다

PastorHaHa 2021. 10. 30. 07:32

5장 든든한 벗, 신실과 손잡다

말로만 믿는 믿음, 행함으로 드러나는 믿음

  • 인물
    신실, 수치, 수다쟁이

크리스천이 신실한 길동무 신실을 만나다. 신실이라는 자는 이름 그대로 신실한 믿음을 소유한 자다. 크리스천과 같이 좁은 길을 가면서 수많은 난관에 봉착했지만, 주의 은혜로 신실한 믿음을 지키며 살아남은 자이다. 서로 길동무가 되어 영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변덕 씨에 관한 이야기

두 사람은 이야기중에 크리스천을 따라 나섰던 변덕 씨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절망의 늪에 빠진 후에 다시 멸망의 마을을 돌아갔으나, 주민들에게 믿음을 저버린 자라는 이유로 배척을 받았다. 아이러니 한 것은 멸망의 도시의 주민들 모두 크리스천과 변덕이 떠날 때 손가락질 하던 자라는 것이다.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로다. 내가 하면 로맨스같이 문제 없지만, 남이 부정한 짓을 하면 정죄하는 죄악된 모습.

 

* 신실 이야기

음녀를 만난 신실. 요셉을 유혹한 여자와 같이 온갖 육체적인 만족으로 유혹하였다. 그러나 “그의 발은 사지로 내려가며 그의 걸음은 스올로 나아가나니” 라는 말씀을 새기며 음녀를 외면하였다. 

 

그리고 곤고의 산 아래에서 노인 한 사람을 만났다. 이 자의 이름은 첫번째 아담이며 유혹이란 마을에 사는 자다. 품삯을 주는 조건으로 자신의 일을 하라고 유혹했다. 그리고 물질을 자랑하며 세 딸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자랑하며 일한댓가로 이 딸들과 혼인시켜주겠다고 했다. 신실도 사람인지라 유혹에 살짝 넘어가려 했으나, 노인의 이마에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라” (골 3:9) 는 문구를 보고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노인이 놓아주지 않고 거칠게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신실은 그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라고 울부짖을 수 밖에 없었고, 결국 도망쳐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이내 어떤 한 사람이 바람 같은 속도로 쫓아와 신실을 무지막지 공격하여 신실은 실신하게 되었다. 다기 기운을 차리는 순간, 테러가 계속 이어졌고, 신실은 힘겹게 이유를 물어보았다. 이유는 ‘첫 아담’ 이라는 노인에게 유혹되었기 때문에 테러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테러는 계속되어 거의 죽을 상태까지 갔다. 이때 어떤 한 사람이 다가와 폭력을 가하는 자를 말렸다. 이 자는 옆구리에 구멍이 나 있었다. 곧 주님이심을 알아차린 것이다. 크리스천은 폭력을 행한 자가 모세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모세는 율법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율법을 어기면 벌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신실은 겸손의 골짜기에서 불만이라고 하는 자를 만난 이야기를 한다. 불만은 신실이 겸손의 골짜기로 가는 것을 완강하게 말렸다. 이유는 친척들 (교만, 오만, 허영, 세상 영광)을 배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실은 세상 친척들이 아니라, 지혜로운 자들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임을 믿는 자들)이 명예롭게 여기는 것을 얻기 위해 겸손의 골짜기를 향해 나아갔다고 증언한다. 

 

* 신실의 수치라는 자와의 대화

순례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수치스러운 자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 믿음이란 수치스러운 것. 돈이나 지혜나 권세를 가진 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바로 수치다. 순례자들은 천한 계급이며, 자연과학을 무시하는 자들이라 경멸한다. 또한 설교 듣고 눈물 흘리거나 자신을 나약한 자로 여기는 것은 창피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사소한 악행을 멀리하느라 사람들을 멀리하는 처사는 수치스러운 일이라고도 한다. 

 

신실의 반응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음을 받는 것” 이라는 말씀을 의지한다. 세상의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이 곧 우리의 관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신실은 “수치가 경멸하는 것들이 내게는 가장 영광스러운 것들”이라고 고백하며 저항하였다. 잠언 3:35,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 로 서로를 위로한다. 

 

* 신실의 두번째 만남: 수다쟁이와의 대화

수다쟁이의 특징: 언변은 화려하지만, 삶에 은혜의 증거가 없는 자

 

신실은 수다쟁이의 화려한 언변에 감화를 받는다. 달변가에 마음을 쏘옥 빼앗긴 것이다. 이에 크리스천이 요사스러운 혀로 순진한 사람을 속이는 자라는 것을 경고한다. 수다쟁이는 크리스천의 마을에 살던 사람이기에 잘 알고 있었다. 수다쟁이는 달변가라는 자의 아들이며 수다 거리에 사는 자다. 말뿐이며 신앙이 없는 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다” 것을 명심하라고 한다. 모르는 자들에게는 거룩하고 신앙이 좋은 것처럼 말로 꾸며는 되지만, 고향과 집에서는 악마처럼 굴며 행함이 전혀 없는 자이기 때문이다. 

“영혼과 육체가 별개인 것처럼 말과 행함 역시 다르다네. 그리고 영혼이 없는 육체가 시체에 불과한 것처럼 행함이 없는 말도 시체나 다름없다네.” 

 

신실과 수다쟁이의 대화 재개

신실이 질문한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는 사람의 마음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나요?”

수다쟁이의 대답: 죄를 비난하게 됩니다. 

신실: 죄를 비난하기보다 죄를 미워해야 합니다. 비난은 말 뿐이고, 미움은 마음 중심으로 거부하는 것입니다. 말로만 죄를 멀리하지 말고 마음 중심으로 멀리하는 것이 구원의 은혜를 받는 증거입니다.

그럼 두번째 증거는?

수다쟁이: 복음의 신비에 대해 풍부하게 알게 되지요

신실: 복음의 신비에 대한 지식도 중요하지만, 지식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그저 생각에만 머무는 지식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과 은혜가 동반된 지식이 중요합니다.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진심으로 지키리이다” (시 119:34)

수다쟁이: 불쾌하군요….

신실: 은혜의 역사는 죄를 깨닫게 합니다. 죄에 대한 깊은 슬픔과 수치심을 느끼게 합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할 필요성을 깨닫게 합니다. 

이런 은혜의 역사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은혜의 역사를 사람들에게 고백합니다. 믿음을 고백합니다. 또한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 질문

 

수치는 어떤 사람인가? 

 

믿음을 수치스럽게, 저등한 것으로 여기는 세속주의에 대한 성경적인 답은 무엇인가?

 

신실의 고백중에 이런 고백이 있다.  “수치가 경멸하는 것들이 내게는 가장 영광스러운 것들이다.”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잠언 3:35,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 

 

수다쟁이는 어떤 사람인가? 

 

수당쟁이와 같은 자들에게 예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나? (산상수훈)

 

나에게 은혜의 역사가 있는가? 은혜의 증거가 있는가? 구원받은 증거는 무엇인가?

 

 

* 성경구절

 

마 23:3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고전 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약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시 119:34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pilgrimsprogress.kr/ProGress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