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를 피해; 지극히 작은 자에게
저녁에 강아지와 함께 자주 산책 나가는 곳이 있는데 집앞 police station 이다. 오늘은 경찰서 마당에 세워진 경찰차에 많은 꽃들이 헌화되어 있어 가까이 다가가 유심히 살펴보았다. 아마도 어느 경찰분의 순직을 애도하며 기념하고자 마을 주민들이 헌화한 것을 알게 되었다.
밤 9시가 넘어서 아무도 없는 줄 알고 차 주위를 도는 순간 한 사람이 서 있길래 깜짝이야 하며 움찔하는 순간, 이 사람 또한 놀라서 그런지 영어로 "왓 어 Fxxx..." 이라고 욕을 퍼부었다. 순간 속으로 '이 어린 놈의 새끼가 어디서 욕이야' 맞받아 치려다가 영어가 짧은 것도 있고, 어릴 때 야밤에 놀이터에서 놀다가 동네 깡패에게 끌려가 개고생한 (?) 트라우마가 있어서 그런지, 약간 긴장이 되었다. 혹시나 총이나 칼을 소지하고 있으면 어쩌나 이런 두려움 또한.
그런데 덩치가 나보다 외소해서 다소 안심을 했고, 어둠이 짖게 깔려있었지만 그의 외모가 정상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손도 아니라 두 손이 절단된 모습에 긴장하며 경계한 나의 모습이 갑자기 부끄럽게 여겨졌다. 성격상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말을 걸었다. 이 밤에 여기서 뭐하고 있는지, 그리고 여기 경찰서 앞에 꽃이 많은데 무슨 일인지 아는지, 특히 두 팔이 없는데 괜찮은지 무슨 일이 있었던지 등. 그러자 젊은 친구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서슴없이 쏟아내었다. (알고보니 산책 나올 때마다 볼 수 있었던 허름한 차의 주인이었다. 홈리스라는 추측은 했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일문일답
가족은 있는지?
엄마를 4살 때 여의고 아버지도 어릴 때 도망가고 고아원에서 자랐다.
지금은 어디서 지내는지?
여러 사람이 모여사는 facility 에 살고 있다 (아마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시설인듯).
팔은 어떻게 잃었는지?
러시아에 있을 때 러시아 마피아와 살았는데, 어쩌구 저쩌구... 마피아 때문에 팔을 짤렸다 (이게 실화인지 정말 믿기지 아니했음).
그럼 미국에는 언제 어떻게 왔는지?
14살 때 마피아를 피해서 미국으로 도망오게 되었다.
지금 몇 살?
27살
수입은 있는지?
장애 소셜 시큐리티 매달 600불하고 푸드 스탬프 정도.
일은 하고 있는지?
지금은 없는데, 이전에는 막노동 같은 일을 했었다.
손이 없는데도?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영화에서만 볼 법한 그런 이야기를 직접 들으니 먹먹하면서도 안타까운 사연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게 현실인지 영화 이야기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너무나 안타까운 형제였다.
그리고 나를 Korean church pastor 라고 소개하자, 자기도 우크라이나 교회 다니고 있다고 소개했고, 자신이 이전에 머물던 곳에 한국 사람도 있었고, 간병인이 한국분이시라 한국 음식을 많이 먹었고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특히 삼겹살 쌈 싸먹는 것이 기가막혔다고. 김치뽁음밥, 김치전, 특히 소주가 맛있었다고 한다. 표정에서 정말 좋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저녁 먹었냐고 물어보니 아직 못 먹었다고 해서 잠시만 기다리면 한국 음식 좀 가져다 주겠다고 했다. 집에 다시 와서 김치, 새우 뽁음밥을 즉석으로 요리해서 낮에 아내가 만들어 놓은 불고기와 함께 배달해 주니 얼마나 좋아하던지. 두 손이 없는데 먹을 수 있는지 물어보니 문제 없다고 한다. 핸들을 잡을 손도 없는데 운전까지 할 수 있다고 하니, 사람이란 실로 대단한 존재임을 다시 알 수 있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그리고 함께 기도했다.
아버지 하나님. 고아의 아버지 하나님. 이 형제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 이 형제의 선한목자되십니다.
성령님. 능력의 성령님. 이 형제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옵소서.
알OO 형제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구원하여 주시고 이 청년의 앞길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오늘따라 영어 기도가 어찌나 잘 되던지 주여 감사합니다. 이 형제도 감격해서 너무나 감사해했다. 그러자 내가 다니는 한인 교회 나가고 싶다고 하길래, 속으로 '오 노!' 한인교회분들이 얼마나 당황해하실지. 교회떠난 나를 원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할 수 없이 교회 주소를 적어줬다. 주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지요.)
끝으로 형제에게 당부했다.
아직 젊으니 인생 포기하지 말고 꿈과 희망을 가져라. 주님이 함께 하신다. 알겠제?
교회는 여기 저기 왔다 갔다 하지 말고, 한 군데 정해서 멤버가 되어서 잘 다니도록.
한인교회는 한국말로 하니 가지 말고. 알겠제? (내 이름 괜히 알려줬나 싶다. 가서 pastor Ha 만나러 왔다고 할까 ㅎㅎ)
자주 산책오니 조만간 다시 보자. 식사 맛있게 잘 하고. 굿나잇.
집에 와서 밤에 있었던 일을 나누며 아이들과 예수님의 말씀을 새기며 함께 기도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마 10: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 2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