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증상 발현 8일차 & 격리 6일차.
주일이다.
교회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이다. 완전한 핑계다. 그래서인지 덜 죄책감이 들지만, 코로나로 인해 점점 무뎌져가는 죄책감이다. 목회자로서 괴로운 현실이다.
드디어 버티고 버티던 그레이스 마저도 증상이 확연해졌다. 두통과 코막힘이 심해지기 시작했다. 검사 해보나 안 해보나 확진인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비난과 책임의 화살을 더욱 쏘아 보낸다. 미안하단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숨을 곳도 없고.
무엇보다 아내가 일을 하지 못하여 가계 소득에 지대한 해악을 초래한 이 책임을 무엇으로 보상할까. 주식(IRA 은퇴적립계좌)도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니 엎친데 덮친격이다. Adding insult to injury! Adding salt to wound! Adding oil to fire!
이제 유일한 생존자는 아들!
이 놈도 곧 우리 편이 되겠지라며 걱정 반 자포자기 반! 더이상 집안에서 격리도 무의미해지는 것 같다. 초기에는 방에만 격리했지만, 점점 거실과 주방으로 모이시 시작한다. 티비도 봐야하고 강아지랑도 놀아야 하고, 무엇보다 밥도 먹어야 한다. 그러니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마음 편하게 모두 마스크 벗고 지낼 걸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격리를 하고자 하였기에 아들이라도 그나마 증상이 없다고는 할 수 없고 미미하다. 그래서 다행히 학교라도 갈 수 있다.
(이 글을 쓰는 1/11 화요일 저녁, 아들만 여전히 건재하다. 신기하다. 왜 이 놈만 멀쩡한거지? 라는 궁금증. 그러나 더욱 두고봐야 할 노릇이다. 점점 마스크를 안 쓰기 시작하니 곧 증상이 발현 될수도.)
* 오미크론 확진의 은혜
이 시점에 이런 생각을 해본다.
뗄레야 뗄 수 없는 운명 공동체, 가족이 있어서 감사하다.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호텔 같은 완전히 격리되는 곳에 있었다면, 가족에게 피해를 주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증상이 생기고 확진한 뒤 격리했어도 이미 가족들에게는 노출이 되었을 것이다. 이랬던 저랬던, 집안을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집안에서 함께 격리해준 린이로 인해 감사했고, 몸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남편이랑 아이들 챙겨주랴 고생한 아내에게 감사하고, 비록 늦게 확진 되었지만 엄마를 대신해 가족 요리를 신경 써준 은이에게 감사하고, 아프지 않고 든든하게 가정을 지켜 준 아들에게 감사하고, 무엇보다 한국에서 어려운 시기에 방문해주셔서 손주를 돌봐주시고, 확진되시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가신 아이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잊지 않고 감사할 것은 친구 목사님들과 지인 분들께서 많은 위로와 필요한 것들로 공급해 주셨다는 것이다.)
가족이란 즐거움과 슬픔과 기쁨과 아픔을 언제나 함께 하는 운명 공동체 (뗄레야 뗄 수 없는 공동체) 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한 몸으로, 노아와 그 가족들을 한 방주에서 구원 공동체로, 그리고 예수님의 보혈로 죄인들을 한 형제와 자매로 맺은 확장된 가족 공동체가 되게 하셨다. 만일 홀로 격리되고 홀로 고통스러워 했다면, 서로 고통을 나누고 짊어짐으로서 누리는 은혜와 축복이 없었을 것이다. 비록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지만, 하나님은 이 연약한 자의 실수(?)와 고통을 통해 가족이 하나님의 운명 공동체로서 더욱 사랑가운데 성장하게 하게 하시고 계심을 믿는다.




이 땅의 믿음의 가족들이여!
아파도 감사하며 눈물 날 일 많아도 감사하라.
그 눈물이 주안에서 결코 헛되지 아니하리라.
고린도전서 13:4-8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도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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